티스토리 뷰
목차

서론
저는 반도체 시장에 대한 새로운 호재성 아이템을 찾아보던 중 삼성전기와 SKC, LG이노텍이 사활을 걸고 있는 유리기판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반도체 경쟁이라 하면 GPU나 HBM처럼 칩 자체의 성능에만 시선이 집중됐는데 최근 AI연산량이 갈수록 폭증하면서 방대한 양의 열이 발생하게 되어 기판 자체에 변형과 휨이 발생하면서 성능을 좌우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가끔 저는 기사를 보면 반도체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공랭식 또는 수랭식, 액침 냉각 공법 등 다양한 냉각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냉각법과 달리 소재 자체를 바꿔버린 유리기판은 단순히 변형을 막는 것이 아니라 미세회로 구현과 전송 용량 증가, 두께까지 얇게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현재 기존 플라스틱 기판이 고성능 AI반도체에 한계를 보이면서 유리기판이 차세대 패키징 기술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고 인텔, 삼성전기, LG이노텍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개발과 양산을 준비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기대와는 다르게 상업화는 계속해서 늦어지고 있고 고객 인증과 수율 확보, 양산시점 등 핵심 변수들이 남아있습니다. 저는 SKC의 유리기판 자회사 앱솔릭스가 최근 4,000억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게된 이유와 SKC가 왜 기존 사업을 정리하면서까지 유리기판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는지, 현재 어디 위치까지 와있는지 하나씩 살펴보려 합니다.
플라스틱 기판의 한계 — 왜 하필 지금 무너지나
반도체 칩이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 한다는 사실, 저도 처음엔 몰랐습니다. 칩은 반드시 기판 위에 올라앉아야 전력을 공급받고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이 기판은 거의 예외 없이 플라스틱 계열의 유기 소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싸고 가공이 쉬웠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AI 시대가 열리면서 시작됐습니다. ChatGPT 같은 거대 언어 모델을 돌리는 AI 가속기 칩은 일반 PC 게임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열을 뿜어냅니다. 그 열기 앞에서 플라스틱은 엿가락처럼 늘어납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열팽창 계수(CTE, Coefficient of Thermal Expansion)입니다. 여기서 CTE란 어떤 물질이 열을 받았을 때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수치화한 값을 의미합니다. 플라스틱 기판의 CTE는 약 15~17 수준인데, 그 위에 올라가는 실리콘 칩의 CTE는 고작 3 정도입니다. 무려 5~7배의 격차입니다.
온도가 오를 때마다 기판은 크게 늘어나는데 칩은 거의 안 늘어나니, 결국 받침대가 활처럼 휘어지는 월피지(Warpage) 현상이 발생합니다. 월피지란 기판이 열에 의해 뒤틀리는 물리적 변형을 가리킵니다. 한번 이렇게 휘어지면 칩과 기판을 잇던 수십만 개의 미세 연결선이 끊어지고, 그 순간 수억 원짜리 반도체는 고철이 됩니다. AI 연산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50년짜리 의자 다리가 드디어 부러지기 직전까지 온 겁니다.
왜 유리인가 — 과학적 근거와 현실적 장벽
유리가 답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깨지기 쉬운 소재로 첨단 반도체를 받친다는 발상 자체가 직관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리는 CTE를 실리콘 칩과 아주 정교하게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두 소재가 같은 보폭으로 함께 늘고 줄어드니, 아무리 달궈져도 사이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거기다 유리 표면은 거울처럼 평탄합니다. 이 평탄도가 결정적인데, 표면이 매끄러울수록 더 미세하고 촘촘한 회로를 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텔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유리기판 도입을 선언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출처: Intel Newsroom). 250~400도의 극한 환경에서도 거의 휘지 않으며, 기존 플라스틱 대비 두께는 25% 얇아지고, 전력 소모는 30% 이상 줄고, 데이터 처리 속도는 40% 빨라진다는 수치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렇다면 왜 지난 50년간 아무도 이걸 쓰지 못했을까요. 만드는 과정이 지독히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유리기판이 제 기능을 하려면 단단한 유리판에 수만 개의 초미세 구멍을 뚫어 금속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이 수직 전기 통로를 TGV(Through Glass Via), 즉 유리 관통 전극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유리에 구멍을 뚫으면 대부분 사방으로 금이 가며 깨진다는 점입니다.
이 난관을 뚫는 기술이 펨토초 레이저(Femtosecond Laser)입니다. 펨토초란 1초를 1,000조로 나눈 극히 짧은 시간 단위로, 이 레이저는 그 찰나에만 빛을 쏘아 열이 주변으로 퍼질 틈조차 주지 않고 정확히 한 점만 기화시킵니다. 구멍 하나의 직경은 0.1mm 이하, 머리카락 한 올 굵기입니다. 이걸 수만 개 단위로 오차 없이 뚫어내야 하는데, 구멍 하나만 비뚤어져도 기판 전체가 불량이 됩니다. 좋다는 건 온 세상이 알았지만, 안정적으로 찍어내지 못해서 50년 동안 그림의 떡이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 두께 25% 감소, 전력 30% 이상 절감, 데이터 속도 40% 향상
- 기판 한 장에 칩셋 60개 이상 통합 가능
- 중간 중계 부품인 인터포저(Interposer) 생략 가능 → 신호 지연 감소
- 핵심 난제: 펨토초 레이저로 TGV 수만 개를 무결점으로 가공해야 함
SKC 앱솔릭스의 도박 — 배수의 진을 친 기업
제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건 기술 자체가 아니라 SKC라는 기업의 결단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세계 최초 양산을 노리는 승자처럼 보이지만, 재무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SKC는 3년 넘게 영업적자를 이어왔습니다. 주력이었던 동박 사업이 불황 직격탄을 맞으면서 회사 전체가 흔들렸고, 탈출구가 절실했습니다. 그 답을 유리기판에서 찾은 SKC는 필름·폴리우레탄·CMP 패드·세라믹 등 기존 알짜 사업을 줄줄이 매각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1조 1,671억 원을 끌어모아, 그중 5,896억 원을 미국 조지아주 앱솔릭스 공장에 집중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유상증자란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 시장에서 투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입니다. 부채를 더 쌓는 대신 지분을 희석시켜 실탄을 마련하는 선택인데, 이미 빚 부담이 무거운 상황에서 꺼낸 마지막 카드에 가깝습니다. 수중의 마지막 자산까지 털어 단 하나의 사업에 전부 거는 구조, 제 경험상 이런 선택은 성공하면 영웅이 되고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이 됩니다.
앱솔릭스는 2021년 설립돼 조지아주 커빙턴에 유리기판 전용 공장을 완공했습니다. AMD, 아마존 웹서비스(AWS) 등 빅테크에 샘플을 공급하며 신뢰성 평가를 진행 중입니다. 미국 정부도 칩스법(CHIPS Act)을 통해 이 공장에 7,5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했습니다(출처: U.S. Department of Commerce). 다만 전문가들은 이 보조금에 기술 연구의 미국 내 수행 의무, 이익 공유 조항 등 이른바 황금 족쇄(Golden Handcuffs) 조건이 달려있다고 지적합니다. 달콤한 지원금이 오히려 핵심 기술을 미국 땅에 묶어놓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이 장기적으로 SKC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장 주목하고 있습니다.
양산 경쟁의 현재 — 선점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
당초 시장에서는 앱솔릭스가 2026년 말 상업 생산을 시작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 업계 흐름을 살펴봤더니, 고객사 요구사항 변경 등으로 양산 목표 시점이 2027년으로 밀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공식 확정 발표는 없지만, 연내 신뢰성 평가를 마치고 2027년 본격 양산에 나선다는 관측이 유력합니다.
이 지연이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 큽니다. 삼성전기는 2025년 세종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LG이노텍은 2026년 말 시생산, 2028년 본격 양산을 준비 중입니다. 앱솔릭스와 삼성전기의 양산 목표 시점이 2027년으로 겹쳐버린 셈입니다. 먼저 공장을 짓고 샘플을 공급하며 앞서나가던 선점 우위가 고객 인증 지연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좁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수율(Yield) 문제도 핵심 변수입니다. 수율이란 전체 생산량 중 불량 없이 나오는 정품 비율을 뜻합니다. 유리기판처럼 TGV 수만 개를 뚫는 공정에서 수율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설계와 양산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앱솔릭스가 초기에 칩을 기판 안에 묻는 임베딩(Embedding) 방식을 고집하다 수율을 잡기 어렵자, 상단에 올려놓는 논임베딩(Non-Embedding) 방식을 병행하는 전략으로 수정한 것도 이 현실을 반영합니다.
일본 소재 기업들의 존재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AI 서버용 유리기판에 필수적인 T-글래스(T-Glass) 소재는 일본 기업들이 세계 시장의 90%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핵심 원재료의 공급 주도권이 경쟁국에 있다는 구조적 취약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삼성전기가 일본 스미토모 화학과 합작 법인을 세워 글라스 코어 소재를 내재화하려는 움직임은 이 리스크를 인식한 결과로 보입니다.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저는 소재 독립 없이 패키징 주도권을 온전히 가져가기 어렵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리기판이 플라스틱 기판보다 무조건 좋은 건가요?
A. 성능 지표만 보면 두께·전력·속도 모든 면에서 유리기판이 앞섭니다. 다만 제조 난이도가 압도적으로 높고, 수율 안정화까지 시간이 더 걸린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습니다. 상업화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두 방식이 용도에 따라 공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Q. SKC 앱솔릭스가 실제로 세계 최초 양산에 성공하면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반도체 산업에서 선점은 단순한 타이틀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표준을 만든 기업이 사실상 업계의 규칙을 정하게 되고, 이후 진입하는 경쟁사들은 그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다만 양산 성공 자체보다 고객사 인증과 수율 안정화가 실질적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입니다.
Q. 삼성전기와 LG이노텍도 유리기판을 만드나요?
A. 네, 두 기업 모두 유리기판 양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삼성전기는 2027년, LG이노텍은 2028년 본격 양산을 목표로 파일럿 라인 구축과 기술 개발을 진행 중입니다. 앱솔릭스의 양산 일정이 지연되면서 이 두 기업과의 시간 격차가 당초보다 줄어들었다는 점이 현재 주목받고 있습니다.
Q. 유리기판이 미래 광반도체와 연결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A. 현재 반도체는 구리 전선으로 전기 신호를 보내는 방식인데, 열과 신호 손실 문제가 있습니다. 차세대 광반도체는 전기 대신 빛으로 연산하는 기술로, 유리는 빛을 자유롭게 통과시키는 소재입니다. 즉 지금 유리기판 표준을 선점하는 기업이 광반도체 시대의 핵심 소재 주도권까지 함께 가져갈 수 있다는 맥락에서 이 경쟁이 더 장기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결론
저는 이번 내용을 정리하면서 SKC가 추진하고 있는 유리기판 사업이 단순한 신사업이 아니라 AI 반도체 패키징의 판도 자체를 바꾸는 사안이고 회사의 향후 방향을 좌우할 핵심 승부처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앱솔릭스는 미국 조지아 공장을 기반으로 경쟁사보다 먼저 고객 평가에 들어갔고 기술과 생산라인 측면에서는 분명 선두권에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핵심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실제 고객 인증과 수율, 양산 그리고 매출로 이어지는지를 증명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SKC가 4,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자산매각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유리기판에 투입한 만큼 더 이상 일정 지연이 반복되면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고 삼성전기와의 격차도 계속해서 좁혀지고 있습니다. T-글라스 소재의 일본 의존도는 여전히 구조적 리스크로 남아 있습니다.
유리기판 시장 자체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결국 SKC의 기업가치를 바꾸는 것은 기술에 대한 기대라 아니라 이제는 실제 수주와 매출 입니다. 앞으로 1~2년이 SKC가 '유리기판 선두주자'라는 기대를 현실의 실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구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앱솔릭스의 고객 인증 완료 여부와 2027년 양산 일정, 초기 계약 수주를 중심으로 추적 관찰할 생각입니다.